CSI: S07EP05 - Double Cross (두 개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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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 갖다 붙인 키워드: 증오와 사랑 그리고 용서
에피소드 가이드:
신부의 반응을 통해 그리섬과 브래스 경감은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여자의 목에는 목이 졸린 흔적이 있고 그리섬 반장은 흔적을 통해 묵주로 목이 졸렸을 것이라 추측한다. 죽은 여자의 신원이 밝혀지고 여자와 신부와 성당을 후원하는 후원자가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 사실을 추궁하러 성당에 갔던 브래스 경감은 신부와 후원자가 심하게 다투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신부를 심문하자 성당의 수녀가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며 자수한다. 범행 동기도 범행 과정은 막힘이 없는 수녀이지만 물리적으로 그녀는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한층 더 신부에 대한 의심의 눈길이 짙어진다.
피해자의 방에서는 두 종류의 정자가 검출되고 신부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과 함께 피해자가 임신한 상태였음이 밝혀진다. 후원자였던 빅 험브레에게서 압수한 차에서 혈흔이 검출되자 과학수사대는 그가 범인임을 확신하게 되고 그에게서 범행 일체를 자백받게 된다.
이번 에피소드의 명대사:
그리섬: 저자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
신부: 그게 예수님의 뜻인걸요. 무슨 뜻인지 아실 겁니다.
그리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군요.
(이런게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인가보다.
고뇌에 찬 그의 눈빛에서 사랑과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된다.)
인상적인 대사:
"이것은 종말이 임박햇음을 알리는 기적이야."
(예수님의 고상의 손위로 피가 흐르는 것을 본 수녀가)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지도 모른다.
"부활 종교학자인가 보군요. 부활 종교학자는 속죄보다는 용서를 중요하게 여기죠."
(이번 에피소드는 주제는 단언하자면 용서이다.)
돋보이는 점 혹은 아쉬운 점:
기도를 위해 사용되는 묵주가 살인무기로 사용된 점이 인상적이다.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든 이용하는 사람에 의해 그 목적이 바뀌게 마련이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묵주는 그 외에도 신부와 젊은 시절 친구였던 여인의 사랑을 확인하는 소품으로도 사용된다. 하나의 소품을 여러가지로 활용하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연출이 돋보인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가장 두드러진 캐릭터는 캐서린이다. 성당에서 죽은 아버지 샘의 명복을 빌고 에릭에게 일이 가장 좋은 약이라는 말을 하면서 그녀가 현재 얼마나 어렵고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가고 있는 지 은연중에 표현한다.(그렇다고 하기에 여전히 지나치게 담담한 캐서린이지만) 묵주를 통해 자신의 종교관을 드러내는 그리섬 반장도 인상적이다. 늘 그렇듯 사건 하나의 자신의 신념이나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그이지만 이번 에피소드의 화두인 속죄와 용서를 언급함으로서 속죄보다는 용서가 중요하다는 제작진의 주장을 은연중에 전달하는 것 같다.
순간적인 분노에 의해 사랑하던 여인을 죽인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여자와 친구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십자가에 못질까지 해서 성당 천장에서 묶어놓다니 다소 과장된 전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여자라고는 해도 고작 정부 정도의(결혼해서 멀쩡히 결혼생활하는 남자이므로) 취급을 하던 남자가 배신당했다고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그 무엇보다는 살인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세상에 대한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죽음보다는 사후 처리방법에서 인간의 잔인성을 논하다는 것.
감상 및 총평:
전 에피소드에 이어 이번에도 인간에게 내재되어있는 흉악함을 그려낸다. 신앙을 가지고 성당을 다니던 남자가 자신의 종교적 지도자이며 친구인 신부의 성당에서, 그리고 예수님이 지켜보는 아래서 사랑하던 여자를, 그것도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죽이고 그것을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의 성당에 십자가의 형상으로 매달았건 것을 그 외에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치 그리스 시대의 비극을 보는 것처럼 이번 에피소드는 종교와 우정을 한계까지 이용해 온갖 극적 설정을 했다. 그는 마치 악마가 한순간 자신에게로 온 것 같았다고 한다. 악마가 찾아간 것은 사실이다. 누구의 마음 속에나 악마의 씨앗이 하나 정도는 숨어있으니.
범행 방식도 범행 장소도 모든 것이 악마적이라고 할만큼 잔인하다. 화면이 끔찍한 것이 아니라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던 세 사람의 인생이 그려내는 결과가 잔인하다.
그러나 이번 에피소드가 앞의 에피소드와 다른 것은 용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점이다. 이번 에피소드는 분노로 저지른 범행뿐만 아니라 사랑도 그려내고 있다. 세속으로 돌아가는 신부는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대변하는 인물이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보다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성직마저 포기하지만 여인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죽인 친구는 자신에게 찾아와 고해를 한다. 그녀를 죽였노라고. 그러나 그는 결국 용서한다. 이미 물러나기로 했음에도 성직의 길을 걸었던 그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왜 종교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카톨릭 성직자의 1%가 매년 성직을 포기한다고 한다. 그 중에 상당수는 사랑을 찾아서라고 하니 예수님의 사랑만큼이나 인간의 사랑도 강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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